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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과 그들의 제국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들은 편협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두뇌활용능력에 비해 아마도 한 열배쯤은 더 사려깊고, 입체적인 사고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인간으로 하여금 이토록 큰 슬픔과 번뇌를 단지 시간 축내기 만으로 치유하기보다는, 더 큰 아픔과 충격과 상처를 통해 점차적으로 더 크고 짜릿한 망각의 전율을 느끼도록 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게 세련된 방식인지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인간으로서 조금 억울한 상상이긴 하지만, 내 삶의 리듬을 총체적으로 회고해보면 그리 억지스러운 상상만도 아닌 것 같다. 지난 몇 년간은 한 마디로 소강상태였다. 당분간 평화와 지루함이 지나치게 가까이 공존했다. 그런데 조금씩 넘실거리는 파도, 등뼈를 서늘하게 저며오는 불행한 기운들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낯익은 공포감에 나는 한동안 놀라 경직되었지만, 그대로 산산조각나지는 않았다. 이제야 나는 어른이 되어 매일 아침이면 가파른 두려움의 절벽에 올라 미지의 시간을 기다리며 올테면 오고, 또 갈테면 가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런 사이 친구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탓이라면 내 탓이겠지만, 우정이라는 모래성을 단단하게 만들거나 혹은 허물어뜨리는 것은 누구의 덕이랄 것도 누구의 탓이랄 것도 없는 일이라고 판단되었다. 어차피 예고없이 닥치는 거센 밀물에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쓸려내려가고, 또 다시 회복기를 갖고, 그 조차도 어느 정도의 인내와 배려 없이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사라져버리기도 하니까.

괜찮은 숫자 3.
서른 셋이라는 강박.
3월의 연애담.

이런 것들에 연거푸 이끌려 나는 3월 내내 새 생명을 갖기를 희망했고, 싱거우리만큼 쉽게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두 달에 걸쳐 첫 아기때 겪지 못했던 메스꺼움과 속쓰림, 입덧으로 고생했고, 단 한 차례에 불과했지만 빠르고 규칙적인 새 생명의 심장박동 소리를 확인했고, 그렇게 몇 일이 지나지 않아 갑자기 멎은 입덧과 함께 아기는 유산되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게는 아름다운 첫 아이가 있었고, 갑자기 그 아이의 모든 사소한 행동에 눈물을 흘릴만큼 감격을 느끼게 된 과잉반응을 빼면, 나는 그런대로 잘 버텨왔다. 갑자기 들이닥친 막막한 우울감이 아니라, 이유 있는 슬픔이었기 때문에. 게다가 추억할 것 조차 없는 이별이었기 때문에.

새벽이면 죽음에 대한 상상이 펼쳐진다.
우연히 올라탄 택시에서 급브레이크를 자주 밟는 택시드라이버를 만날 때처럼, 소심하게 두근거리며 아침을 맞이하기도 한다. 
아아! 먼저간 이들을 잊고 내가 너무 자주 웃어대는 건 아닐까?
살아남은 자가 가져야 할 감정은 숙제와도 같이 내내 '슬픔'이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많은 것들이 무의미해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 그리움,,, 차츰 분노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게 된 것 역시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온 일이다.
지금 내게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건, 몇몇의 피붙이들과 통장의 알량한 잔고 뿐이다.

몇 천 년 전의 사람들과 꼭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할 뿐이면서 감히 모던의 이후를 비평적 관점에서 논쟁하기를 즐기는 우리는 언제쯤 우리도 옛 사람이 되어 늙고, 병들어 죽어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까? 새벽마다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어리석은 상상들이 깨끗이 눈감아 죽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도 끈질긴 유머는? 그것만큼은 우리 삶의 브라보라 해도 좋지 않을까?  

by 사나운복숭아 | 2008/05/19 10:50 | variation writing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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