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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베이시스트의 다짐.
베이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지 넉달이 되어간다.
다룰 줄 아는 악기라고는 피아노와 리코오더, 스무살 때 재미삼아 배운 소피리 정도가 다인 내가 현악기의 세계로, 그것도 묵직한 베이스 기타의 세계로 빠져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다.

도레미파솔라시도가 리니어하게 펼쳐진 건반에 비해, 기타의 옥타브는 줄을 따라 위로, 아래로, 옆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임이 가능하다. 비쩍 마르고 길쭉하니 울퉁불퉁한 내 손가락을 두고 사람들은 '재주 없는 손', '게으른 손' 이라며 비웃고는 하지만, 나름대로는 피아노나 기타를 치기에 꽤 괜찮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나이 다섯살 무렵,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가난했던 유년기의 설움을 잊지못하는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피아노는 값비싼 사치품이었겠지만, 중산층의 가정에서 자란 엄마는 남매에게 일찍이 피아노를 가르쳤다. 살아 생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지나치게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피아노 앞에 앉아 엄마가 남매에게 줄곧 불러주던 노래는 산타루치아였다. 창공에 빛난 별 물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라고 시작하는 이 노래가, 그러니까 말하자면 내 인생의 진정한 십팔번이 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좋아하던 남자아이의 생일파티에서 산타루치아를 부르며 목이메어 떨려오는 목소리를 주체 못하던 일도 떠오른다. 생일 축하의 곡으로 삼기에는 퍽, 슬픈 노래였던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오빠와 함께 두드리던 피아노 소곡집의 몇몇 연탄곡의 화음도 아련하다. 이성에 대한 사랑을 알지 못했던 어린 시절, 진정한 동료애의 보람과 기쁨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해주었던 것이 바로 오빠와 함께 연탄곡을 연주하던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으면 완주할 수 없는 연탄곡이나, 분단별로 목소리를 높여 부르던 돌림노래의 감동은 직접 연주를 하거나 불러본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각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밴드를 하고 싶어하고, 노래방에서도 다른 이의 노래에 맞춰 탬버린을 흔들어주며 서로들 즐거워 하는 거 아닐까?

아무튼, 나는 이제 초보 베이시스트다.

렛 잇 비나, 미셸, 밤이 깊었네 등을 연주해본 것이 고작이지만, 언젠가는 이 악기가 내 몸에 붙어 낮은 음으로 자연스레 리듬을 타는 그 날이 올 것이다. 피트니스 센터나 요가학원 등을 통해 내 히스테리와 지친 정신세계를 다스리고자 시도하기도 해보았지만, 내 몸은 정말로 그것들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둥둥둥, 베이스라는 악기는 정신 수양을 위해서도 매우 좋은 구실을 해주고 있다. 나는 이제 현실은 대충대충 살아가려 한다. 나는 가상의 친구와 가상의 카페에서 가상의 연주회를 열고, 가상의 기쁨을 느끼며 살아갈 작정이다. 위험하지만 안전장치는 충분하다.


p.s 아메리칸식 세컨드 라이프와는 형식상 다름.



Bill Withers - Lovely Day

스물 다섯 살쯤 이 노래를 처음 듣고, 베이스를 배우고 싶었다.
빌 비더스의 힘빼도 멋진 목소리를 노래가 끝날 때까지 힘 있게 받쳐주는 베이스의 묵직함이 듣기 좋았다. 이 동영상에는 베이시스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소리는 무척 크게 들린다.
그래도 이 노래는 라이브 보다는 그냥 음반이 좋다.
by 사나운복숭아 | 2007/12/18 17:26 | variation writing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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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osun at 2007/12/26 05:11
크리스마스는 잘 보냈어? 베이스에 계속 열심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난 여기서 휴대용 25건반 짜리 키보드를 하나 사려고 해. 전부터 갖고 싶었는데 한국보다 약간 싸더라구. 노트북에 연결해서 간단하게 작업할 수 있는 장비야.여행하다가 원스 ost의 fallen from the sky같은 노래 한 곡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 언젠가 너의 베이스와 강웅이의 기타에 맞추어 건반연주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 네 글 덕에 오랜만에 옛날 감상에 젖었어. 건강하지? 즐거운 날들 보내고, 또 메일 쓸게~
Commented by 사나운복숭아 at 2007/12/26 12:59
크리스마스때 강웅씨 바가지 박박 긁었어. ^.^ 강웅씨가 배탈이 난 바람에 아무 것도 못했거든. 그런데, 이번 크리스마스때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흔한 문자 메세지 조차 한 통밖에 못 받았어. 정말 올 한 해 내가 얼마나 사람들과 소원하게 지냈는지, 느끼는 바가 많았어. 오빠는 홀로 생일과 크리스마스 어떻게 보냈누? 지선짱에게도 문자 한 통 못보냈네. 어쨌든 오늘은 계약하는 날이다. 정말 클리어하게 해결 되었으면 좋겠어. 점장이 말로는 12월에 하는 계약이 좋다고 했다네. 기대해보자고... ^^ 좋은 여행길 되길 바래. 보고싶더라. 술이라도 한 잔 생각 날땐 더욱. 참. 설탕바에 잠깐 갔었는데, 심감독이 오빠 여행 소식 모르더라. 이메일 알려줬어... 그럼... 힘내요. 살 좀 찌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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